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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에 Ben Folds의 시디를 받고 흐믓했는데, 염치없이 눈에 들어오는 시디가 있었으니...
바로 Django Reinhardt 의 시디였다. 설마하는 마음으로 신청했는데...또 왔다. 방금전 다 들었는데...참 좋다.
저런 아저씨가 그리운 시절이다. 잘 빗어넘긴 머리와 잘 다듬은 수염, 약간 두툼하고 직물이 드러나는 양복...스트라이프 셔츠...담배...굵은 손가락과 손등에 난 터프해 보이는 털... 멋지지 않은가?
으아, 음악 너무 좋다.
Django Reinhardt (1910~1953)
집시의 혈통을 이어받은 전설적인 재즈 기타리스트 장고 라인하르트는 1910년 1월 23일 벨기에의 리베르치즈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마누치(Manouche)’라는 집시의 혈통을 이어 받았았으며12세때 어머니로 부터 벤조를 선물받아 현악기에 대한 감각을 익히기 시작했다. 장고는 18살때 첫번째 부인과 결혼해 공동묘지 부근의 포장마차에서 살았다. 한데 어느날 사고로 화재가 발생해다리와 손에 심한 화상을 입게 되었다. 이 사고로인해 그의 두 손가락은 마비돼 기타연주를 할 수 없었다. 이후부터 장고는 핑거링시 두 손가락을 질질 끌며 지판을 이동하는 특이한 연주 모션으로 끝까지 기타리스트에로의 길을 포기하지 않았다. 1930년에 장고는 바이더백, 니콜스, 에디 랭 등과 같은 백인 연주자들과 아울러 듀크 엘링턴과 루이 암스트롱 등의 연주에 깊은 감명을 받게 된다. 장고의 정식 데뷔는 1933년으로, 재즈 바이올린주자 스티븐 그라펠리와 함께 잼 세션을 가진 것이며, 이어서 장고는 퀸텟을 결성해 34년 'Dinah', 'Tiger Rag' 등의 재즈곡들을 녹음했다.(장고의 최초의 레코드는 그가 아코디언의 반주와 함께 연주한 'Ma Requliere'와 'Griserie'로 28년에 녹음되었다.) 2차대전 중엔 프랑스를 떠났고, 46년경 듀크 엘링턴 오케스트라와 짧은 기간동안 연주여행을 하며 자신의 또 다른 기타세계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건강이 좋지 않았던 그는 항상 잦은 병고로 고생해야 했다. 건강을 위해 자주 낚시를 하러 가곤 했었는데, 53년 어느날도 낚시를 하던 중 갑작스럽게 죽고 말았다. 장고는 일생동안 집시로 남길 원했다. 그는 호텔 방에서 갑자기 사라져 집시의 야영지로 가 며칠을 묵는가 하면, 기분에 따라 돈을 받지 않고 기타를 쳤으며, 종종 일주일간 번 돈을 하룻밤의 도박으로 날려버리기도 했다.장고의 기타엔 집시적인 슬픔과 낭만이 있다. 'Minor Swing', 'Ou Estu Mon Amour?' 등에서의 우수에 찬 리리시즘은 장고만의 매력이랄 수 있다. 그는 또한 박자에서 떨어져 프레이징을 하는가 하면, 멜로디컬한 옥타브 주법을 창출해 명 라인을 만들어 내었다. ‘터미널 비브라토’라고 일컬어지는 고유의 핑거 테크닉도 완성하였다.